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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환이 만난사람- 한국고승(高僧) 백운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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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환이 만난사람- 한국고승(高僧) 백운스님

김용환이 만난사람

           한국고승(高僧)  - 백운스님 <미륵사 주지>


-사람다운 사람되려면 자신을 경책해야-


   
                     ▲ 중앙 백운스님, 좌측 이승중씨. 우측 필자


 청해진신문] 2005년11월5일 오후3시30분에 부산 동래구 금정산 정상에 위치한 미륵사의 주지로 계신 한국고승(高僧) 백운스님을 만났다.  범어사입구에서 1시간20분 산길의 돌밭을 거슬러 올라 천년고찰 미륵사를 찾은 필자 石泉은 1박을 하면서 백운스님의 수행한담을 들었다.


미륵암은 의상(義湘)대사가 당(唐)나라로부터 귀국한 670년(문무왕 10) 이후에 범어사를 창건한 해 지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삼국유사》의 기록과 같이 678년에 지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범어사를 창건한 해에 원효대사가 세운 절로 이 곳 한가운데 위치한 염화전 뒤편의 거대한 바위가 스님이 좌선하는 모양과 같다고 하여 '좌선바위'라 불리우고 있다.


이 좌선바위 뒤편에는 미륵불과 닮은 미륵불을 향해 좌선을 하고 있는 형상의 터에 원효는 기도도량을 세운 것이다. 미륵암이란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원효대사의 자취가 서린 미륵사는 미륵불과 독성불을 모신 첫손 꼽히는 기도도량으로 이름이 높다.


미륵사의 영험한 약수를 마시고 금정산의 봉우리들을 내려다보면 저절로 원효대사의 만물유심조(萬物有心造)처럼, "마음이 있으면 갖가지의 일이 생기고, 마음이 없으면 갖가지의 일도 저절로 없나니, 모든 일이 마음 갖기에 달려 있느니라" 그렇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오직 마음에 있거나 없을 뿐이다. 마음을 비우면 천하를 준다해도 티끌 하나만 못한 법이다. <편집자 주>


   
                                                     ▲ 천년고찰 미륵사


♦ 백운스님의 수행한담


-사람다운 사람되려면 자신을 경책해야-


-콩 한쪽도 나누어 먹는 것이 불법실천-



“부처란 바로 참사람입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산다면 그속에 이미 행복이 들어있어요”


 시대가 어지럽고 인간 본연의 모습을 점점 잃어가고 있으니 임제선사의 진인(眞人)사상이 그 어느 때보다 그립습니다. 나는 임제선사의 ‘참사람-眞人’사상을 가장 높이 우러르고 있으며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참사람이 되고자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처님을 일컬어 불(佛)이라고도 하고 크게 깨달았다고 해서 ‘대각(大覺)’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고 또 일체가 마음에서 이루어진다 해서 ‘심(心)’을 강조하고 또 본성을 찾아라 해서 ‘성(性)’이라고 하는 등 불, 심, 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임제스님에 와서 참사람, 진인이 이야기되기 시작했어요. 부처란 무엇이냐 하면 바로 참사람이다 이말입니다. 진실로 사람다운 것이 부처입니다.

사람다운 것을 떠나서 부처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죠. 불본주의, 심본주의, 각본주의를 뛰어넘어 인본주의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임제스님의 진인사상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이 불교이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이 민주주의라는 걸 일깨워 줍니다. 그리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 때 그속에는 이미 행복이 들어 있는 것이죠.


사람다운 사람으로 사는 길을 배워나가는 출가의 길을 내가 선택한 것이 아주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이라고 늘 생각합니다. 출가는 단순히 세속에서 절집으로 들어오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번뇌의 굴레에서 벗어나서 자기 성품을 깨달아 참사람이 되는 것이 진정한 출가입니다. 나는 다섯 살 때 절에 들어와서 아홉 살까지 살다가 학교를 다니기 위해 다시 속가로 갔지요. 그때의 출가는 수행 정진을 위한 출가라기 보다는 단지 짧은 명을 연장해 보려고 하는 그런 출가였던 셈이지요.


그러나 그 인연이 이어진 것은 6·25 동란 때입니다. 6·25때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선친은 빨갱이들에게 학살당했고 나도 세 번이나 끌려가서 죽을 고비를 넘겼어요. 공산주의에서는 종교는 아편이라고 해서 금지했는데 그런 사상에 동의할 수가 없었지요.


나는 도망을 쳐서 산속 절에 들어가 숨어 있었습니다. 그때 나는 관세음보살님께 기도하며 약속을 했습니다. ‘이번에 살려주시면 출가해서 다시는 세속에 나가지 않겠습니다’고. 그 기도의 원력인지 나는 세 번이나 잡혔지만 그때마다 초등학교 동창이 살려준다거나 후배가 살려준다거나 해서 살아나게 되었지요. 그래서 관음보살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6·25전동란 끝나고 바로 출가했습니다.


처음에 백양사를 찾아갔습니다. 당시 조계종 종정이시던 만암 노스님이 계셨는데 어려서는 내가 백부라고 부르던 어른이셨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분의 제자가 되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만암스님께서 당신은 연세가 많고 해서 석산스님을 은사로 모시라고 하더군요.


그러나 내가 범어사 선방으로 공부를 하러 가게 되는 통에 석산스님을 모시고 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나중에 화엄사, 송광사, 범어사의 강사를 할수 있게 된 것은 석산스님의 가르침 덕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강사를 하면서도 내가 모르는 것이 있으면 찾아가 여쭙고 그랬으니까요. 나는 주로 만암노스님께 경전과 조사어록을 배웠는데 조사어록을 배우다 보니 선방에 가고 싶은 마음이 났습니다. 어려서는 팔만대장경만 다 알면 도인이 되는 줄 알았는데 조사어록을 보니 견성을 해야 한다고 되어 있더라구요. 그래서 그해 동안거를 범어사에서 났습니다.


그때 범어사 조실스님이 동산스님이셨는데 처음 뵈었을 때 내가 마음으로 늘 그려왔던 큰스님의 얼굴이었어요. 그래서 첫해부터 시봉을 한 삼년 했습니다. 동산스님은 네 상좌다, 내 상좌다 하는 권속 갈림이 전혀 없는 분이고 큰방에서 야단치시더라도 당신 방에 가시면 전혀 딴 얘기를 하실 정도로 뭐든 돌아서면 금방 잊어버리셨어요.


그리고 6·25때 그렇게 절살림이 어려워도 아무 차별 없이 오는대로 스님들을 다 받았어요. 원주스님이 사람 많이 받았다고 투덜거리면 “하늘은 녹없는 사람을 태어나게 하지 않았고 땅은 이름없는 풀을 기르지 않는다”라는 말씀을 늘상 하시곤 했어요.


즉 모든 사람은 자기 먹을 것은 다 짊어지고 다니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이셨죠. 오는대로 다 받아 들이다 보니 항상 쌀이 부족했어요. 국수나 수수, 강냉이 등을 배급받아 먹었는데 어떤 때는 국수를 사흘동안 먹고서 모두들 설사가 나서 고생하기도 했지요.


그래도 스님은 눈 한 번 찌푸린적 없고 찬이 없어도 불평 한번 하시는 것을 본 적이 없어요. 그만큼 검소하고 소탈하신 분이었지요. 그리고 공부에 있어서는 아주 확실한 가르침으로 방향을 잡아 이끌어 주시는 지혜를 갖추신 분이었습니다.


내가 참선을 하다가 공에 빠졌거든요. 아주 고요하고 고요할 뿐 아무 문제가 없고 편안한 겁니다. 그래 스님께 말씀을 드렸더니 스님께서는 “그러면 안된다. 그럴 때일수록 화두를 잡아라”하시더군요. 그러나 공에 빠지면 너무 편안하고 시간도 잘 가기 때문에 화두가 잡혀지질 않아요. 스님은 나를 볼 때 마다 화두 잡았는지를 확인하지만 나는 계속 화두를 잡지 못하고 있었어요. 그렇게 몇날 며칠을 반복해서 나의 화두를 챙겨주시면서도 화도 안 내시고 자상하게 일러주시더군요.


그렇게 20일을 지냈어요. 그런데 하루 저녁 스님 시봉 마치고 들어와 잠깐 누웠는데 목침에서 떨어지면서 잠이 깨어 화두를 들었는데 화두가 들어지는 겁니다. ‘어째서 조주는 무라 했는가’하는 화두가 너무나 역력하게 잡히는 겁니다. 새벽3시에 노전스님이 도량송으로 천수경을 하시는데 전부다 ‘어째서 무라 했노’하고 들리는 겁니다. 그리고 개울물 소리도, 풍경소리도 그리고 전체가 ‘어째서 무라 했노’라는 소리로 들리더군요. 아침에 스님께 말씀을 드렸더니 고개를 끄덕이시며 “너는 이제 공부 좀 하겠다” 하시더군요. 지금까지 그 은혜를 잊을수가 없어요.


만약에 내가 공에 빠져서 그 고요가 좋은 줄 알고 그 경지에 머물러 있었더라면 지금도 헛세월만 보내고 있었을 텐데 안목이 밝으시니까 바로 이끌어 주시더군요. 그만큼 공부에는 눈밝은 선지식의 가르침이 중요한 법입니다. 그리고 동산스님은 대중생활을 할 때도 몸소 실천해 보이신 분입니다. 아침 공양이 끝나면 제일 먼저 빗자루 들고 마당에 나가시니 다른 대중스님들이 안 나갈 수가 있겠습니까? 이렇게 어른이 앞장서니 질서가 잡히고 다 잘되기 마련이지요.


지리산 천은사위로 올라가면 상선암이라고 나옹스님이 계셨던 곳이 있는데 불교정화 이후 그곳에서 3년간 혼자 탁발해서 먹고 지냈습니다.


그렇게 공부를 하다가 아주 어려운 갈림길앞에 섰던 적도 있습니다. 내가 젊을 때 동국대학이나 불교대학을 다녀서 공부를 하면 포교도 하고 좋겠다 싶어 스님들이 학교를 많이 갔거든요. 해인사에서 세웠던 해인대학의 후신인 마산대학(현재 경남대학)에 종교학과가 있었어요. 그곳에 용성스님 상좌인 월주스님이 주임교수로 있어서 경상도의 젊은 스님들이 그 학교를 많이 갔어요.


현재 역경원장인 월운스님, 동국대 총장을 지내고 조계종 총무원장인 지관스님 등이 모두 동기예요. 그런데 그렇게 공부를 위해 학교를 갔던 이들이 속세로 많이 나갔어요. 그때 100명중 90명은 환속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예요.


나도 그때 대학원에 시험을 쳤는데 시험을 쳐놓고 보니 학교를 꼭 가야 하는가 회의가 생기더군요. 학교에 가서 세속으로 나가 교수가 되고 선생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면 중노릇을 그만두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내가 학교를 갔다가 만약에 세상으로 나가게 된다면 6·25때 관음보살님과 ‘다시는 세속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한 약속을 깨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학교에 가지 않기로 결정을 내렸죠.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스님된 것을 후회해 본적 없어요. 내생에 다시 태어나도 스님노릇 하고 싶어요. 생각해 보면 중노릇처럼 좋은 게 없어요. 무소유의 삶이 제일 마음 편하고 좋은 것입니다. 욕심은 한정 없는 것이니 그 욕심자체를 비우고 물욕에 물들지 않도록 조심하며 사는 것이죠. 이렇게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에 물들지 않는 마음으로 살기 위해서는 ‘수처작주(隨處作主)’라는 말을 새겨볼만 합니다.


수처작주는 어디든지 어떤 환경에 처하든지 그곳에서 주인이 되라, 즉 주인공이 되라는 말입니다. <보살계경>에 보면 보살계를 받으면 지옥에 떨어지면 지옥의 왕이 되고 아귀계에 떨어지면 아귀의 왕이 되고 인간계에 떨어지면 인간의 왕이 된다는 말이 나옵니다.


보살계를 받으면 지옥에 떨어져서도 그곳의 주인이 된다는 말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그곳의 주인이 되는 마음 얼마나 멋진 경지입니까?


  우리 모두는 현재의 자신을 냉정히 돌아보고 참사람이 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 미륵사 찾아가는 필자(石泉)
요즘 사람들은 오로지 남과 경쟁해 이기려고만 하고 뭐든지 많이 갖고자 아귀다툼을 벌입니다. 자신의 사리사욕만 채우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는 현재의 자신을 냉정히 돌아보고 참사람이 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참사람이 되어 모든 곳의 주인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 어려운 시대를 극복할 힘과 지혜가 생겨날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험해지고 어려워진다 해도 사람답게 살겠다는 정신을 버리면 안됩니다. 그렇게 될려면 굳은 신심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신심을 바탕으로 참선수행을 하여 자신의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비워야 한다. 비워야 한다 말은 하면서도 실지 왜 못비우느냐 하면 참선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참선을 한다는 말은 자기를 돌이켜 본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반성하고 자기가 자기를 성찰하는 것에서 자기의 허물을 벗어날 수가 있는 겁니다.

자신이 알게 모르게 짓는 잘못을 참선을 통해 깊이 성찰하면 그 잘못들은 저절로 없어지게 되죠. 자기를 돌아보는 사람이라야 자신의 잘못을 알고 바로 벗어날수가 있는 겁니다. 그리고 어려울수록 보살도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보살행은 나보다는 남을 위해 사는 삶을 말합니다. 이타자리, 즉 다른 이를 이롭게 하고 다른 이를 다 불도(佛道)에 들어오게 하겠다는 원력이 중요합니다.

그런 보살도를 행하려면 육바라밀을 실천해야 합니다. 육바라밀을 실천하면 자연히 보살도 정신은 실현되는 겁니다. 콩 한쪽도 나누어 먹던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바로 불법입니다.


이웃과 함께 어려움을 나누고 기쁨을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 그것이 바로 보살도인 것입니다.
그렇게 보살도의 정신으로 사람이 사람답게 살면서 부단히 정진하면 깨달음은 저절로 오게 마련이지요.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자기 잘못했다는 소리는 없고 모두들 책임을 남에게 돌려 버립니다. 이렇게 경제적인 어려움을 당하게 되어도 누구 한사람 책임감을 느끼고 내 잘못이다 하는 사람이 없잖아요.


큰 사건 날 때마다 책임질 사람이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서로가 내 탓이구나, 내가 잘못했구나 하고 자기 책임이라고 반성을 해야 향상이 될텐데 전혀 책임감이 없으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우리 종단의 분쟁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서로가 책임질 줄 알아야 합니다. 모든 것은 자기 자신에게서 출발합니다. 그것은 한치의 오차도 없는 진리입니다.


<명심보감>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마음을 밝히는 보배로운 거울’이라는 뜻의 책이예요.  어려서 나도 <명심보감>을 배웠지만 그때는 그 깊은 뜻을 몰랐어요. 그 책 내용은 무슨 특별한 것이 아니라 전부 세상 사람들이 사는 얘기지 불교란 불(佛)자 한 자가 없어요.


그런데 끝에 가서 ‘바닷물이 마르면 마침내 바다 밑바닥을 보지만 사람은 죽어도 마음을 알지 못한다’는 말이 나옵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왜 죽어도 마음을 모르느냐 말입니다.


그래요, 사람들은 자기를 모릅니다. 자기 마음을 모른다는 소리는 자기 자신을 모른다는 말과 같아요. 이 세상사람 전부는 자기를 모릅니다. 전부 남의 탓으로 생각하고 좋은 일은 자기가 했다고 하고 나쁜 일은 다 남이 했다고 해요. 옛 조사들은 법을 위해서 신명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요새는 법을 위해 신명을 바치는 이들보다는 자기 이권을 위해서 신명을 아끼지 않는 이들이 더 많은 것 같아 안타까워요.


한국고승(高僧) 백운스님은 우리 모두 이제 깨달음을 위해 신명을 바치는 참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불제자 모두는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경책해 나갑시다” 고 당부했다.


♦백운스님(미륵사)

ㆍ법명 : 백운  ㆍ직함 : 주지

*약력 


1934년 전남生

53년 동산스님을 은사로 비구계 수지

60~82년 영동 중화사, 포항 오어사, 경기 영월암, 김해 장유암 주지 역임·범어사 지리산 토굴 등지에서 정진 ·71~87년 화엄사, 범어사, 송광사 강사, 87년말~90년2월 완도신흥사

현재 부산 미륵사에 주석


·<양치는 성자><진묵대사><부설거사><오세동자의 오도> 등 소설 다수

<인터뷰:2005년11월5일 石泉 김 용 환>

새감각 바른언론-청해진신문 www.wando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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