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4 (수)
에세이-
"주부는 죄인"
시인 황 경 연
‘주부’라는 이름의 직업에 대해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 시인 황경연
상한선도 하한선도 없는 아주 맹랑한 직업입니다.
출근도 없고, 퇴근도 없는 아주 붙박이 직장입니다.
승진도 없고, 휴가도 없고, 보너스도 없습니다. 보수요? 굳이 챙기자면 가족들의
사랑과 그들의 올바른 삶을 살아가는 것을 보는 것이지요.
그런데 대접은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는 ‘타박 일색’입니다.
집안이 어질러져 있거나 설거지가 안 되어 있을 때, 또 그날 입어야 할 옷이 완벽
하게 준비되지 않았을 때 ‘주부의 역할이 무엇이냐?’고 모든 가족이 정색하며 따집
니다.
‘주부’는 모든 식구에게 영원히 갚을 길 없는 빚진 죄인입니다.
아이가 조금만 아파도, 놀다가 무릎이 깨져도 ‘도대체 집에서 뭐했기에 아이가 이
모양이냐?’고 합니다.
아이가 성적이 떨어졌다든지, 친구들과 어울려 귀가가 늦어지면 ‘엄마라는 사람이
자식들을 어떻게 가르쳤기에 이 모양이냐?’고 호통입니다.
주부가 참다 참다 하루 이틀 몸져눕기라도 하면 집에서 한 게 뭐가 있어 아프냐며
한마디 합니다. 그것은 곧 비수가 되어 주부의 가슴팍에 꽂혀 좀체 빠질 생각을 안
합니다.
주부는 짜증을 받아내는 바구니입니다. 이것저것 구분 없이 집어던져진 짜증을 가
득안고 종일 삭히느라 가슴이 아립니다.
‘주부’라는 직업을 가진 것이 죄일까요?
때로 주부도 지칠 때가 있습니다. 주부도 짜증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가끔씩 주부도 사표를 쓰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아이를 혼자 낳은 것도 아니고, 혼자 기를 수도 없습니다. 특히 사내아이들은 아버
지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는 말도 있습니다.
주부 혼자 모든 것을 다 해내리라는 기대는 접어주세요.
주부는 완전한 사랑 제조기가 아닙니다.
함량이 특대인 전천후 사랑제조기는 더욱 아닙니다.
퍼내고 퍼내면 더러 마르기도 하는 샘.
제 몸 다 부서질 때까지 일하고 나면 어느 한 순간 멈춰버리고 마는 여리디 여린
사랑 제조기일 뿐입니다.
주부는 완전한 스펀지가 아닙니다.
함량이 특대인 스펀지는 더욱 아닙니다.
일정량의 물을 빨아들이고 나면 수명이 다하듯
가족들의 짜증과 불평을 있는 대로 받다보면 멈춰버리는 한정된 용량의 스펀지일
뿐입니다.
황경연 : 청해진향우,
시인(월간 창조문예 등단)/동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수는 위대하다.’ 외./
시종중앙교회 송남용 목사의 사모/전남 영암군 시종면 만수리 886-1 시종중앙교회. .
계좌번호 복사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