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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해진칼럼]이상현 목사(완도한빛교회)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어르신 공경) ‘노인’이라는 ‘인류’가 따로 있다고 착각하는 젊은이들에게 이상현 목사(완도한빛교회) 나는 초등학교 때 할아버지,할머니는 원래 할아버지,할머니로 세상에 오셔서 할아버지,할머니로 살다가 세상을 떠나는 줄 알았다. ‘노인’이라는 ‘인류’가 따로 있는 줄 알았다. 그리고 부모님은 부모님이라는 신분으로 세상에 오셔서 부모님으로 사시다가 부모님 모습 그대로 세상을 떠나는 줄 알았다. 그리고 나는 어린이 모습 그대로 영원히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던가를 나중에 깨달았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천국에 가신 후, 수십년의 세월이 흐르자 아버님도 할아버지가 되셔서 천국에 가셨다. 그리고 어머님도 지금 칠순의 할머니가 되셔서 얼굴에는 주름이 생기고 머리에는 하얀 눈이 내리셨다. 그리고 37세에 완도 망석리에 온 나는 47세의 중년이 되었다. 50줄을 바라보는 중년이 된 것이다. 세월이 이렇게 빠른 줄 몰랐다. 나는 초등학교 때 잠시 ‘노인’이라는 ‘인류’가 따로 있어서 그분들은 노인으로 세상에 오셔서 노인으로 세상을 떠나는 줄 알았지만, ‘노인’이라는 ‘인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일이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초등학생도 아닌 청소년이나 젊은이들 중에는 아직도 어릴 때의 나처럼 ‘노인’이라는 ‘인류’는 따로 있고, 자신들은 영원히 ‘청소년’이나 ‘젊은이’라는 ‘인류’로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노인들을 아주 무시하고 업신여기고 우습게 여기는 젊은이들이 있다. 심지어 내일 모레면 노인이 될 50대 중반인 어느 아저씨는 60대 중반의 어르신에게 ‘노인양반, 햇소리 좀 그만 하시오.’ ‘노인양반이 뭘 그래?’하며 말머리마다 ‘노인양반’운운하며 아주 무시하고 우습게 여기며 말을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내가 보기에는 그 50대 중년양반보다 60대 어르신이 훨씬 점잖고 지식도 많고 존경스러운 분인데, 단지 노인이라는 이유로 계속 말머리마다 ‘노인양반’ 운운하며 무시하며 말을 하는데 옆에서 들으니 얼마나 속이 상했는지 모른다. 그 50대 중년양반은 불과 몇 년 후면 자기도 노인이 될 터인데 아직도 자기는 영원히 50대 ‘중년’이라는 ‘인류’로 남아있고 ‘노인’이라는 ‘인류’는 따로 있는 줄 착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청소년이나 청년들이나 장년들이 <‘노인’이라는 ‘인류’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세월은 쏜 화살같이 빠르다. 나도 곧 노인이 된다.>는 생각만 가지면 어르신들을 대하는 태도가 확실히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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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왕 장보고천년전의 글로벌 CEO, 해상왕 장보고 저자 : 한창수발행일 : 2004.08.20형태사항 : 별판, 110pISBN : 89-7633-241-5 04320가격 : 5,000 해상왕 장보고 - 삼성경제연구소 발간 삼성경제연구소는 『천년전의 글로벌 CEO, 해상왕 장보고』(SERI 연구에세이10) 책자를 발간했다. 이 책은 강력한 카리스마와 결집력으로 모래알 같이 흩어져 있던 신라인을 하나로 모으고, 청해진을 중심으로 거대한 해상 왕궁을 만들었던 전략가였지만,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역사의 저편으로 영원히 잊어질 뻔 했던 장보고란 인물을 통해 진정한 글로벌 CEO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제시하고 있다. 또한 그의 글로벌 마인드는 국제화 되어가고 있는 오늘날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의 삶에는 강대국인 중국, 일본과 어깨동무할 수 있는 비결이 숨겨져 있다. 이제 우리는 신라시대 그가 가졌던 꿈과 성공비결을 통해 우리가 처한 난관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한 수 배워야 될 것이다.장보고, 그는 누구인가천한 신분으로 태어나 당나라의 장수가 되다장보고는 8세기 말(통일신라시대)에 완도 부근의 한 섬에서 미천한 신분으로 태어났다. 9세기 초, 세계의 중심국인 중국(당나라)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발군의 재능을 발휘한 장보고는 무령군 군중소장이라는 신라인이 좀처럼 오를 수 없는 지위에 오르게 된다. 당시 군중소장은 천 명의 군사를 거느린 장수였다. 재당 신라인 사회의 구심적인 역할 수행외국인으로서 평화적인 시기에 군에서 더 이상 출세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된 장보고는 군을 떠난다. 827년부터 8년간 장보고는 재당(在唐) 신라인 자치기구인 신라소와 신라방의 행정 책임자로서 역할을 수행한다. 장보고는 신라소의 책임자로서 이국 땅에서 천시받는 재당 신라인의 권익과 복지를 위해 힘썼다. 그 한 예로 장보고는 적산법화원을 설립하여 신라인의 구심점 확보에 주력했다. 또한 행정 조직 안에 통역관, 짐꾼, 연락책을 두었고, 전용 선박까지 구비하여 신라인들의 무역과 유통업에 편의를 제공했다.해상장악을 위한 전초기지 청해진 건설신라 흥덕왕 3년(828년)에 장보고는 양민을 노예로 매매하는 해적들의 참상에 분노하여 이를 근절하기 위해 귀국한다. 당에서 혁혁한 공을 거뒀으며, 재당 신라인 사회를 결속시킨 장보고의 공을 인정한 신라의 흥덕왕은 흔쾌히 병사 1만의 군진을 설치하도록 허락하고, 장보고를 대사(大使)로 임명한다. 그 결과 우리나라에서 여섯번째로 큰 섬인 완도에 청해진이 설치되었다. 완도 앞바다는 다도해의 암초, 밀물과 썰물의 변화, 육지와 부딪쳐 소용돌이치는 해류, 계절에 따라 바뀌는 해풍 등으로 변화가 많은 천연의 요새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어시누스대학교의 클라크 교수는 완도의 항해사적, 전략적 중요성을 지적하며 장보고의 천재성을 찬탄하기도 했다.군(軍), 산(産) 상(商) 복합체적 종합상사, 청해진청해진 대사에 임명된 장보고는 해적을 소탕하고 국가 간의 무역을 장려하여 동북아 해상을 지배했다. 그는 신라, 당, 일본 항로의 요충인 청해진을 군사, 선단, 항만, 조선, 항해 전문가, 통역관, 종교 시설 등이 결집된 복합적 성격의 군진으로 위치시켰다. 또한 청해진은 신라 정부로부터도 일정한 독립적 행정과 경영체제를 유지했다. 이러한 까닭에 청해진은 점차 동북아 교역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이곳에는 일본과 당나라의 상인들은 물론이고 멀리 아라비아와 페르시아 상인까지 드나들었다고 한다. 오늘날로 비유하자면 청해진은 군(軍), 산(産) 상(商) 복합체적 종합상사라고 할 수 있다. 장보고와 해상왕국의 몰락신라 민애왕을 폐하고 신무왕을 즉위시키는 정변에 개입하게 된 장보고는 이후 중앙정계의 권력 다툼에 휘말리게 된다. 신라 조정을 장악한 진골 귀족들이 장보고를 견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침내 장보고를 제거하기로 결정한 신라 조정은 장보고의 옛 부하 염장을 시켜 장보고를 암살한다. 그 결과 장보고가 죽은 지 10년 안에 청해진은 해체되고 그의 해상왕국은 소멸되었다. 허망한 장보고의 죽음 이후 신라의 국제교역은 거의 단절되었고, 신라인들은 동아시아 해상의 패권을 송나라 상인들과 아라비아 상인들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이후 고려와 조선으로 이어지는 역사에서 해상 경영은 지속적으로 후퇴했다. 그 결과 19세기 후반에 조선은 서양과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장보고, 그는 어떻게 해상을 지배했는가시대를 읽는 남다른 눈의 소유자장보고는 조공무역이 퇴조하고 민간무역의 시대가 도래하리라고 판단했다. 장보고는 종래의 중앙집권적 질서가 와해되고 국가 간 긴장이 완화되면서 민간의 자발적 교역이 증대하리라는 혜안을 가졌다. 즉 민간인이 자유롭게 오가는 개방적인 세상의 도래를 정확히 예측한 것이다. 그러한 인식에 기초하여 장보고는 중국의 양주(陽州)에서 일본의 하카다까지 섬과 대륙으로 둘러싸인 동북아를 하나의 세계로 바라보았다. 웅대한 스케일의 해양 지향적 사고를 가진 것이다. 국제적 감각의 리더십을 소유한 리더민군(民軍) 1만과 그 가족으로 이루어진 해상왕국이 질서를 유지하며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했던 것은 장보고의 탁월한 리더십에 기인한다. 상이한 문화와 국경을 망라하는 글로벌 네트워크의 지휘자로서 장보고는 포용력을 갖고 있었다. 즉 그는 국가별 문화적 차이를 인정할 줄 알았으며, 다양한 인재를 거느리는 도량을 지녔다. 일례로 장보고는 조선술, 항해술, 통역 등 청해진에서 요구되는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인적 자원을 대부분 해외에서 조달했다. 광범위한 지역에서 인적 자원을 아웃소싱했던 건 그의 국제적 감각의 리더십을 소유했음을 말해준다.군사력, 조선술, 항해술 등 완벽한 실력의 구비장보고가 동북아 해상을 소유할 수 있었던 요인 다음과 같다.첫째, 군사력이다. 장보고는 1만의 군사를 확보했다. 당시 영해라는 의식조차 희박하던 시절 장보고는 강력한 군사력을 기반으로 해상교역을 주도했다. 둘째, 조선술이다. 바다를 향한 신라인들의 열정은 장보고 이전 시대부터 계속되어 왔으며 그 결과 신라 선박은 멀리 일본에까지 그 우수성이 알려질 정도였다. 일본의 민간인과 국가 사절들은 대외교류에 장보고 휘하의 배들을 이용하곤 했다. 이렇듯 당시 신라의 조선술은 뛰어났다. 셋째, 항해술이다. 서해 연안, 대한해협의 물길을 모두 알고 있던 신라인들은 범신라인을 조직화하여 항선의 관리를 일원화했다. 주도권 확보를 통한 선발자의 이익 극대화장보고는 조공무역이 주류를 이루던 시기에 민간교역을 도입하여 활성화시킴으로써 새로운 교역형태를 창출했다. 즉 새로운 산업이 형성되는 초기 단계에서 주도권을 잡고 선발자의 이점을 극대화시켜 나간 것이다. 그는 동북아의 정세 변화에 맞춰 조직화된 민간차원의 무역거래를 시도함으로써 무역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정의했다. 장보고 선단은 무역업무뿐만 아니라 정부간 무역의 대행, 3국 정부의 공식사절 안내, 여객 운송, 선박 건조와 수리, 통역과 선원 제공, 종교와 문화 지원, 실크와 청자개발 무역 등 각종 상업 서비스와 문화사업까지도 수행했다. 청해진은 국제적 교역지 답게 다양한 품목을 취급했으며, 일부 신용거래 방식까지 도입했다.네트워크의 활용청해진은 신라, 당, 일본 항로의 중심이자 페르시아, 인도, 태국 등 동남아시아와 중국 동남부를 연결하는 남양 항로와 동북아 항로의 연결 고리였는데 이는 신라, 당, 일본에 거주하는 신라인들을 포괄하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가능할 수 있었다. 청해진을 중심으로 3국에 거주하는 신라인들은 오늘날의 종합상사에 버금갈 정도의 강력한 정보력을 확보하고 있었다.글로벌 가치의 중요성에 대한 이해장보고는 개방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당시 국제 사회에서 통용되던 글로벌 가치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청해진 중심의 해상체제의 국제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청해진의 활동에 당과 일본을 참여시키기 위해 당시 세계에서 통용되던 글로벌스탠더드를 적극 도입했다. 즉 당나라의 직제를 청해진의 조직에 차용했다. 또한 장보고는 불교를 당시 신라, 당, 일본을 포괄하는 보편적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으로, 3국을 잇는 가치체계로 삼았다. 즉 국적을 초월한 공감대 형성의 필요성을 이해한 것이다. 이러한 의식은 중국 산동성에 적산법화원, 완도에 상왕봉이라는 법화사의 창건으로 발현되었다.장보고가 제시하는 기업경영의 노하우는 무엇인가고정관념 없는 기업가 정신장보고가 민간교역의 신기원을 연 건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은 탓이다. 골품제에서 자유로웠던 장보고는 청해진의 설치와 민간교역 과정에서 끝없이 새로운 가능성에 도전했다. 남들이 미처 보지 못한 가능성을 정확히 읽고 이를 두려움 없이 실천하는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이야말로 기업과 국가의 국운을 좌우하는 관건이다. 오늘날 한국 기업들에게 필요한 것은 세계의 높은 문턱에 도전하여 글로벌 기업이 되려는 기업가 정신이다.21세기 경영의 키워드(복합화, 네트워크화, 글로벌화첫째, 복합화이다. 청해진은 무역과 관련된 종합적이고 복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신비즈니스 모델이다. 이러한 복합 비즈니스 모델은 뒤로는 후발국 기업들의 추격을 받고, 앞에서는 선진기업들의 압박을 받는 한국 기업들에게 절실한 모델이다. 오랜 세월 탄탄한 제조 경쟁력을 구축해온 한국 기업은 이제 제품, 기술, 사업을 복합화함으로써 새로운 진로를 모색해야 한다.둘째, 네트워크화다. 장보고가 구현한 해상지배 역량의 원천은 동북아 해상과 연안을 거미줄처럼 엮는 네트워크였다. 오늘날의 경영환경에서 네트워크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고 있다. 종래 한국 기업들은 이같은 경영 추세에 아랑곳하지 않고 대부분 자력주의, 순혈주의를 고집해 왔다. 이제 사내 기밀 유지, 임직원의 충성심과 단합 등을 중시하는 경영환경은 탈피되어야 한다.셋째, 글로벌화다. 긴장완화 시대, 개방화 시대에 살아남는 노하우로 장보고는 글로벌스탠더드를 수용했다. 오늘날 글로벌화의 필요성을 당시보다 절박하다. 허나 대부분의 한국 기업들은 본국 경쟁력에 의존한 채 소극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현재 많은 기업들은 세계화(globalization)와 현지화(localization)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학계에서는 이 두 단어를 합성하여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이라 부르고 있으며, 아직 그 구체적 방법론에 대해서는 합의가 없으나 각 기업은 자사의 핵심 역량과 제품, 시장의 특성을 고려하여 자신에게 맞는 글로벌화를 모색해야 한다.무형자산의 활용장보고의 경쟁우위는 눈에 드러나는 것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즉 정확한 항로파악, 항해술과 조선술, 각 지역 산물과 거래에 대한 지식 등이야말로 절대적 경쟁우위 요소였다. 핵심기술을 비롯한 지식기반은 기업의 가치창출과 경쟁력의 원천이다. 오늘날 기업들에게 기술, 브랜드, 기업 이미지 등의 무형적 경쟁요소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경쟁자와 차별화를 꾀하려면 무형자산 축적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경영의 지속가능성 추구장보고의 죽음으로 청해진은 급작스럽게 몰락했다. 이는 청해진이 시스템이나 조직력을 갖추지 못한 장보고 개인의 역량으로 운영되었기 때문이다. 조직이란 리더의 개인적 한계를 넘어설 때에만 비로소 영속할 수 있다. 경영의 영속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확고한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시스템은 리더십과 더불어 조직을 구성하는 양대 축이다. 조직은 시스템을 통해 리더를 포함한 구성원 개개인의 약점이나 한계를 커버할 수 있다. 경영의 영속성을 위한 두번째 방안은 후계자 양성이다. 서구의 많은 기업들은 차기 CEO를 육성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반면 대부분의 한국 기업들의 후계 구도는 불분명하다. 리더십의 공백이라는 불의의 사태를 예방하는 법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권력과 긴장 관계 유지청해진의 갑작스런 종말은 장보고가 중앙의 권력 다툼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즉 그는 기업인으로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것이다. 고금을 막론하고 정치 권력은 성공한 기업가가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기업이란 모름지기 권력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정치권력과 기업은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不可近不可遠)’의 관계여야 한다.제2, 제3의 장보고는 어떻게 출현되는가사고 발상의 대전환오늘날 동북아 지역의 긴장 완화를 국운 상승의 계기로 삼을 수 있도록 대외 지향적이고 진취적인 국가 아젠다를 설정해야 한다. 새로운 아젠다는 남북분단, 지역감정, 계층간 갈등 등의 대립에서 벗어나 대내적 상생과 대외적 공생의 국민적 공감대를 갖는 것이어야 한다.글로벌 민족 역량의 결집장보고가 해외에 흩어진 신라인들의 거점을 자산으로 보았듯이 우리도 재외 한국인 동포를 전략적으로 격려 지원해야 한다. 또한 이들 중 우수 인력이 국가에 봉사할 여건과 기회를 마련하고, 이들에게 주어지는 각종 제약은 해제해야 한다.해상 경영의 활성화반도인 한국은 대륙 국가이자 해양 국가이다. 그러나 오랜세월 우리는 대륙 국가임을 주장했다. 이는 해양 국가임을 스스로 포기한 셈이다. 21세기 한국의 선택은 달라져야 한다. 목전에 이미 도래한 정보화와 글로벌화는 대표적인 해양화 추세이다. 태평양 시대의 중심국가를 지향하는 한국은 향후 더 한층 해양 경영을 강화해야 한다. 이는 옛 영화를 복고하자는 태도가 아니라, 가진 것을 개방하고 남과 교류하여 상호 이익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 경제적 측면만 보아도 우리의 수출입 물동량의 99% 이상이 바다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으며, 조선산업에서는 세계 빅3 업체를 모두 보유한 세계 1위의 조선국이다. 해양 경영의 활성화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동북아시아 허브국을 향해21세기 한국 경제가 가진 큰 비전 가운데 하나는 한국이 동북아, 더 나아가 동아시아의 허브국이 되는 것이다. 중국 경제의 성장, 남북 긴장 완화 등은 허브국의 비전을 현실성 있게 만들어주는 조건이다. 한국은 인적 자원이 우수하고 중국 등으로 진출이 쉬운 이점 뿐 아니라 높은 기술력을 보유하여 동북아 허브국으로서 손색이 없다. 동북아의 허브국이 되기 위해 전략적 요충지로서 황해와 동해의 활용을 극대화해야 한다. 앞으로 해양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도서 영유권 분쟁도 계속될 것이다. 이 문제에서도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바다 국경선이 가장 많이 중첩되고 이해관계가 복잡한 한국의 주도적 참여도 관건이라 하겠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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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군 민·관 "한 목소리" 29명 공무원 구제하자사회단체 성명서 발표 잇달아 완도군에서는 참여연대완도시민회의가 전공노(전국공무원노동조합) 총파업과 관련해서 성명서를 발표하였으며 이에 완도군청 실과장 일동이 성명서를 발표하고 (가칭)완도군민연대에서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29명의 완도공무원 살리기운동에 민과 관이 함께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고 있어 다행이다. 공무원불법파업에 대해 적극가담자는 어쩔 수 없다지만 단순가담자인 완도군청 29명의 공무원들을 구제하자는 목소리는 한결같다.아무쪼록 이들이 반성하여 구제되는 좋은 결과가 나타나길 바란다.<편집자 주> 다음은 성명서의 원문을 싣는다. 참여연대완도시민회의 성명서를 보면서 ! 참여연대완도시민회의가 전공노(전국공무원노동조합) 총파업과 관련해서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성명서에 의하면 마치 총파업이 우리 군의 일 때문이고 우리 군과의 대화부족으로 빚어진 결과라는 인상을 지워 버릴 수 없습니다. 무슨 근거로 누구의 말을 믿고 그리 쉽게 속단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전공노 완도지부가 무엇 때문에 국민 여론을 무시하고 파업을 했습니까? 노동3권 확보, 특별법이 아닌 일반법 제정, 연금 문제 등으로 파업을 감행 했습니다. 대화가 부족했다고 주장했는데 이 문제는 군수가 아니라 중앙정부와 대화로 해결할 사안입니다. 우리 군에서는 어떻게 하든 파업만은 막아 볼려고 정말 많은 애를 썼습니다. 국민의 공감을 얻기 힘들기 때문에 파업을 자제해 달라는 서한문을 전 직원에게 보냈고, 군수와 노조간부와 대화하고 저희 실과장과 읍면장들이 나서서 설득하고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수차례 보냈습니다. 파업 전날에는 부군수와 실과장 몇 사람이 직원들이 모여 있는 영암까지 가서 설득하고 또 달래도 보았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파업은 실패했습니다. 도내 대부분의 시군이 파업을 철회하고 정상근무에 임했습니다. 상황판단이 빨랐고 단체장의 지시를 잘 따랐던 시군은 한명의 희생자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최소한 우리지역 시민단체가 군민을 위하고 군정과 공무원을 위했더라면 공무원 파업만은 자제해 달라는 성명서 한 장이라도 발표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또한 공무원노조를 찾아가 설득에 나섰더라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29명의 직원들이 징계를 당할 사태에 직면하고 우리군 또한 어떻게 하든 직원들의 희생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는 이때에 군의 대화 부족을 지적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우리 군에서는 군민여러분께 파업을 막지 못해 불편을 끼쳐드린 점에 대하여 사과했습니다. 군수께서는 오늘 또한 징계문제를 협의하기 위하여 완도군의회 임시회 등 모든 일정을 미루고 조금이라도 직원들의 희생을 적게 하기 위하여 도청을 방문하였습니다. 군수를 비롯한 군청 모든 직원들은 징계 요구된 직원들을 구제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지켜봐 주시고 적극적인 성원을 보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2004. 11. 22 완도군청 실과장 일동 *********************************************************************************참여연대완도시민회의 성명을 접하고 - 성 명 서 참여연대님의 글에 대한 답변입니다. 성 명 서 이제야 소잃고 외양간 고친다. 공무원 불법파업 이전에 참여연대완도시민회의 자유게시판에는 완도군노조의 불법파업을 자제하는 성명서를 참여연대 완도시민회의는 발표하라고 군민들의 항의성 글이 올라있었다.그러나 참여연대완도시민회의를 비롯한 위에 성명서를 발표한 단체들도한마디의 성명서를 발표하지 않고 방관하였다. 완도군민들은 다알고 있는사실이다.전국의 많은 사회단체들이 파업자제 성명서를 발표하고 공무원의 불법파업이 시행되면 국민적인 저항을 받게될 것을 강력하게 충고하며 파업자제 홍보문을 만들어 출근하는 공무원들에게 배포하며 설득하였다. 충청북도옥천군 사회단체일동은 군청입구에서 출근하는 공무원들에게 파업자제를 설득하고 국민에게 봉사하자며 추운날씨에도 공무원들에게 설득하며 설득하였다.참여연대완도시민회의 와 윗글의 성명서를 발표한 단체는 이제야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식이 되어버린 성명서를 이제야 발표했다. 완도군공무원노조는 중앙정부와의 대화부족으로 인한 전공노의 지시대로 이번 파업을 주도한 사실은 완도군민 대부분이 알고 있는 사정이다. 그럼에도 완도군 실과장의 부하살리기 위한 일련의 행동은 박수를 받아야한다.핸드폰으로 복귀하도록 사정하고 집에있는 가족까지 연락하며 복귀하여 정상근무를 하자고 사정하며 호소하는 모습을 각실과에서 볼 수 있었다. 파업당일 군청 실과를 방문했던 군민들은 다알고 있는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곳에 나와 파업복귀를 위해 참여연대완도시민회의 와 윗글의 성명서를 발표한 단체의 사람들은 나타나지도 않았다.이러한 사항을 완도군민들은 알아야하며 이제야 소잃고 외양간 고친다. 그럼에도 29명의 단순가담자들은 구제해야한다.시민단체들은 완도군을 왜곡하지 말고 파업자제를 유도하지 못한 자신들의 잘못부터 분명히 시인해야한다. 공무원노조 완도군지부의 불법파업을 사전에 설득하며 막아야 할 의무를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전에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는 사실을 다 인지 했을것이다. 이제야 말로 군민이 하나되고 완도군민 화합을 위하여 왜곡 선동하는 일을 버리고투쟁과 데모등을 지양하는 일에 우리모두 마음을 비우고 29명의 단순가담자 구제에 나서자. 완도군민화합을 통해 29명의 완도군청공무원을 평상심으로 국가와 국민에게 봉사하는본연의 자세로 자기 자리로 돌아와 일할 수 있도록 우리모두 함께 나서자. 한번의 실수를 거울삼아 영원히 완도군민을 위해 봉사하는 공무원이 될 수 있도록 올바른 인도를 하자. 2004년11월22일 (가칭)완도군민연대위 단체를 준비하는 완도군민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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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용택- 전,강진완도 국회의원 검찰 불기소 처분에 대한 성명서천용택 전,국회의원(강진완도)은 군납비리에 대한 검찰의 불기소처분이 최근에 내려지자 다음과 같은 본인의 입장을 정리하여 성명서를 발표했다. 검찰의 불기소 처분에 대한 본인의 입장 검찰(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은 2004. 6. 11.자로 본인이 (주)한국레이콤 대표 정호용으로부터 5,000만원의 뇌물을 수수하였다는 경찰의 혐의에 대하여 최종적으로 무혐의 처분을 내리면서 아울러 정치자금법위반은 이미 공소시효가 도과되었다는 이유로 실체 판단을 생략하고 불기소(공소권 없음) 결정을 하였다. 경찰은 2003. 12.경부터 소위 `군납비리수사`를 진행하면서 본인이 마치 국민의 정부시절에 군에 관련된 비리의 중심에 있었던 것처럼 언론에 흘리고 여론을 도원 하여 본인의 인권을 유린하면서 가열 찬 수사를 벌였으나 결국 검찰의 불기소 처분이라는 최종 판단이 내려진 것이다. 본인이 마치 부정한 돈을 수수한 것처럼 비쳐진 경찰의 혐의내용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된 것은 너무나 명백한 사필귀정으로 생각한다. 또한 본인은 그동안 공직에 재임하면서 부정한 비리에 관여한 사실이 단 한 가지라도 드러나면 어떠한 책임도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다고 누차 공표해 왔다. 아울러 여론 몰이 식 한건주의 수사로 평생을 국가안보를 위해 헌신해온 한 정치인을 정치적으로 사형과 같은 혹독한 피해를 입게 하여 17대 총선에서는 정치적 선택마저 제한시켰고, 전직 국방부장관과 국정원장으로서 사회적 명예를 처참하게 짓밟아 온 경찰의 무리한 수사에 대하여 강력한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경찰은 그동안 약 6개월 동안 수사를 진행해 오면서 소환사실이 본인에게 통보도 되기 전에 이미 언론에 보도하고, 자신들이 발표한 혐의내용이 마치 사실로 확인된 것처럼 수사결과를 발표하여 피의사실 유포행위를 자행하였고, 당사자의 오락가락한 구두 진술만 있을 뿐 아무런 물증이 없고, 또한 어떠한 청탁도 받은 바 없는 순수한 후원금(법정한도액)을 뇌물로 억지로 단정하고 무려 3회에 걸쳐 구속 품신을 올려 검찰로부터 모두 반려를 받는 등 무리하게 수사를 진행하여 왔다. 정확한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예단만을 가지고 벌이는 이러한 구시대적 한건주의 수사관행, 피의사실 공표 등 인권유린 행위는 이제 개혁의 대상이 되어 이 땅에서 영원히 사라지도록 관련자들에 대하여 마땅히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끝으로, 본인은 이번 검찰의 불기소 처분을 계기로 참여정부의 국정과제 개혁을 뒷받침하기 위해 열린우리당 창당에 적극 동참하였던 초심으로 돌아가 열린우리당 과 참여정부의 성공을 적극 지원할 것이며 전남 강진과 완도 지역구 주민들을 위해 견마지로를 다할 것임을 다짐하고자 합니다. 2004. 6. 15 열린우리당 중앙위원 천 용 택 <입력;2004,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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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용택의원에 대한 성명서천용택 의원 불구속 송치에 대한 우리의 입장 열린우리당 중앙위원인 천용택(강진·완도) 의원에 대한 '군납수뢰 혐의'와 관련, 경찰수사는 지난 3일 검찰에 불구속 송치로 일단락 된 것은 사필귀정으로 생각한다.지난 2월 1일 제17대 총선 불출마라는 결단을 내려 큰 감명을 주었던 천 의원에 대한 경찰 수사는 지난해 12월초 시작된 지 5개월 여만에 최초 경찰이 제시했던 혐의사실에 대해서 어떠한 사실도 밝혀내지 못한 채 검찰의 최종 법적 처분만 남겨 놓고 실질적으로 종결단계에 이르렀다.이에 대해 열린우리당 전라남도당은 여론몰이 수사로 평생을 국가안보를 위해 헌신해 온 천 의원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정치적 운신의 폭을 제한시킨 무리한 경찰수사에 대해서 유감을 표시하지 않을 수 없다.열린우리당 전남도당은 천 의원에 대한 경찰수사 진행과정을 지켜보면서 피의사실 공표 등 인권유린 행위는 물론, 정확한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예단만을 가지고 진행된 무리한 수사관행이 이 땅에서 영원히 사라져야 된다고 생각한다. 정확한 사실과 증거에 의한 과학적인 수사만이 국민의 인권침해를 막는 길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끝으로 이번 사건이 검찰에 불구속 송치된 만큼 지난해 9월 참여정부의 각종 국정개혁 추진을 뒷받침하기 위해 열린우리당 창당에 적극 참여해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전남에서 열린우리당이 도민의 지지와 사랑을 받아 4·15 총선 대승에 기여한 천 의원의 억울한 혐의가 조속한 시일 내에 법적으로 종결되어 다시 우리 전라남도와 국가발전에 기여할 수 있게 되기를 진정으로 기대한다. 2004년 5월 6일 열린우리당 전라남도당 공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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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말씀이 있는 하루]-⑦종교 [말씀이 있는 하루]-⑦ 정 직 예수님은 우리를 향하여 진실성을 요구하신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에게는 간단하게 "예"라고 할 때 그것이 "예"를 의미하고 "아니오"라고 하면 "아니오"를 의미하는 것이 최고이며 최선인 대답이다. 가당치도 않은 말을 덧붙여 진실을 흐리는 것은 악한 일이며(마5:37),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요8:44)가 하는 짓이라고 주님은 가르치셨다. 이 진실성 문제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초대 교회에 큰 감명을 남겨 주었다. 신약성경에 있어서 최초로 기록되었을 서신인 야고보서에 보면 이 점이 많이 강조되어 있다(약5:12)그리스도인들은 진리를 가지고 진리 그 자체인 예수 그리스도(요14:6)를 따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대화 내용은 진실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대부분 우리의 주장을 더 강조하거나 우리 자신을 사실보다 멋지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 애매한 관점에서 말하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가?우리는 대부분 책임을 감당하는 것이 두렵고 자신에게 이롭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의 책임을 저버리고 우리가 하고 싶은 일들을 말하지 않는가? 또 나처럼 선생이며 설교자인 사람은 자신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하기 위해 증거를 꾸며내거나 자신이 전혀 모르는 분야를 교리 화시키면서 교리가 우리의 무식을 감추어 주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지 않는가? 내가 지금 말하는 것은 정직한 실수가 아니다. 부분으로 전체를 가리는 의도적인 사기를 말하는 것이다.우리 주님은, 하나님의 권위에 복종하는 사람들에게 진실만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아무리 조심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신다. "내 말이 내 마음의 정직함을 나타내고 내 입술이 아는 바를 진실히 말하리라"(욥33:3)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 참 평안을 몰랐구나 내 주 예수 날 오라 부르시니 곧 평안히 쉬리로다 주 예수의 구원의 은혜로다 참 기쁘고 즐겁구나 그 은혜를 영원히 누리겠네 곧 평안히 쉬리로다(찬송가 474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