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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7대총선 강진완도 선거구 열린우리당 기호3번 이영호(李泳鎬)후보▶ 열린우리당 기호3번 이영호(李泳鎬)후보선관위 준법서약서 제출 생년월일: 1959.12.03일생 (남)44세(완도출신)직업: 정당인 학력 및 경력: 부산수산대학교 대학원 5년 졸업(수산학박사) (전) 전남대학교 교수 (전) 해남(강진)수산기술관리소장 (현) 과학기술부 과학기술 앰버서더 (현) 한국조류학회 이사 (현) 한국도서학회 이사 사무실: 061-433-1205 basemi@hanmir.com http://www.basemi.net 재산신고: 626,900천원 병역신고: 군복무를마친사람 납세신고: 21,242천원 체납액 및 전과유무: 없음※위반행위자의 범위는 후보자,선거사무장,선거사무소의 회계책임자,후보자의 직계존· 비속,배우자까지 포함됩니다. 과태료:1건 250,000원, 경고:2건, 주의:0건(선관위2004년4월4일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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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주주의 새역사 창조100만인 대회는 주권 회복 선언하는 축제 전국 30만명...온라인 45만여명 참가 "오늘 우리는 국회가 통과시킨 대통령탄핵안이 무효임은 선언한다. 3.12의회 쿠데타를 국민의 힘으로 진압했음을 선언한다." 오마이뉴스에 따르면'탄핵무효 부패정치청산 범국민 행동'(탄핵무효 국민행동)이 20일 오후6시부터 서울과 부산, 광주, 대구, 대전, 마산, 창원 등 전국 60여 곳에서 개최한 `탄핵무효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100만인 대회'에는 대략 30만명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날 가장 규모가 컸던 서울 대회의 경우 20여만 명, 부산 1만명, 광주 3,000명, 대구 4,000명, 대전 6,000명 등이 참여한 것으로 보고 있다.대한민국 국민들은 2004년 3월20일 또 하나의 역사를 만들어냈다. '탄핵무효 부패정치 청산을 위한 범국민행동'(www.anti312.net, 이하 범국민행동)이 주최한 '3.20 탄핵무효를 위한 100만인 대회'(이하 100만인대회)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한판의 축제였다. 100만인대회는 온라인·오프라인, 국내·외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오프라인에서는 서울 광화문에서만 22만명(주최측 추산, 경찰추산 13만명)이 참여했으며 광주, 대구, 부산, 대전 등 40여개 도시에서도 "탄핵무효, 민주수호"의 함성이 울러펴졌다. 광화문 현장의 시민들은 면서 그것이 곧 국민의 주권과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100만인대회는 오후 5시경부터 자정까지 7시간동안 별다른 불상사 한 건 없이 치뤄진 평화축제였다. 밤 11시를 넘어가면서 어린이와 노인을 동반한 시민들은 속속 귀가길에 올랐다.<굿데이와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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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미래창조5 - 우리지역 신지식인 김유신씨[기획: 새로운 미래 창조] 우리지역 신지식인을 찾아⑤ 유신수산 김유신씨 신지식인은 기존의 방식을 창조적인 방식으로 혁신,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입니다. 고정관념에 얽매인 사람은 기존의 것을 수용할 수는 있어도 새로운 것을 생성할 수는 없습니다. 신지식인이라면 어제 본 사물도 오늘은 다른 눈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완도뉴스청해진신문은 특집기획으로 우리지역 신지식인을 찾아 수년간의 경험으로 이룬 노하우를 전하겠습니다.◑ '슈퍼전복종묘' 개발에 성공한 김유신씨(완도군) 김유신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음악인(피아니스트 겸 오르간이스트)이었다.결혼 후 고향에 내려와 수산에 몰두한지 올해로 23년째인 그는 한때 음악에서 국내정상(호랑나비 그룹사운드)을 달렸으나, 음악인의 꿈을 접고 수산에 전념하면서 둥근 돌김을 발견, 개발 보급해 오는 등 길 가다가도 하찮은 물건이라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어떠한 동기에, 아니면 내 현실에 적용할 수 없을까?'하는 생각에 잠기곤 하였다.그는 항상 현재는 손해보더라도 훗날에 정당한 평가를 받을 것이라는 자부심으로 바른 양심으로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다.김씨는 피조개 종패를 구입하여 양식 시험에 실패하고 강진만 김양식의 갯병으로 인해 종묘 배양한 결과 양식성공으로 보급에 이르기까지 갖은고생 끝에 얻은 결과가 지금 전국에서 유통되고 있는 돌김이다. 김과 전복을 어업으로 전환하였는데 전복은 자세한 자료도 없었고 전국의 양식장을 견학해 보았으나 결국 실패를 거듭하다 해남 수산기술 관리소의 추천을 받아 완도 종묘시험장에서 연수를 받게 되었다.그는 1년 동안의 연수중 날밤을 지새는 지식을 토대로 그의 현실에 맞게 약간씩 응용하여 '이것이 아니면 죽는다!'라는 각오 끝에 세계 최초의 전복 종묘를 생산하게 되었다.그후 '95년도 부산 기장의 수산공무원교육원에서 WTO와 UR대응에 대한 교육을 통해 앞으로 무한한 수입개방 압력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수산업 경쟁력을 갖추어 보고자 연구·노력한 시발점이 양식이었는데, IMF라는 엄청난 파고에도 불구하고 큰 타격 없이 성공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김유신씨는 지금 김양식은 하지 않고 해남 황산에서 김종묘 배양과 완도 군외면에서 전복 종묘 생산을 하고 있다. 전복 종묘 생산을 해오던 중 다른 전복에 비해 3~5%정도 월등히 큰 것들을 발견하게 되었으며 '전체적으로 큰 것들을 생산할 수 없을까?'하는 물음에 몰두하기 시작하여 자연산란의 정자수·알·활력 도와 인공 채란시의 정자수·알크기·활력도 등의 차이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연수 중에 고급어종인 능성어의 부화후 유생때 공기의 충격 및 초기 이료로 인한 실패를 목격한 후 이솝 동화의 여우와 두루미를 연상하고 본격 연구에 들어갔다. 전복 유생의 크기는 약250마이크론 정도인데 어떠한 충격도 허용치 않고 유생 입의 크기에 맞는 먹이가 필요하단 생각 끝에 김사상체 배양 때 영어기록과 배양을 더듬어 적은 크기의 먹이(규조)를 찾기로 하였다.3 ~ 4월에 먹이 배양에 들어가 자연산란에 가깝게 채란 하여 철저히 선별 후 유생 사육에 있어 공기의 충격도 감지하고 유생 선별 후 적정시기에 적정밀도로 채묘하여 입크기에 맞는 먹이를 충분히 유지하도록 철저한 관리(룩스, 청소, 해적생물구제 등)을 한 결과 6개월만에2 ~3cm 전복 종묘를 70 ~80%정도 생산할 수 있었다. 그의 전복 판매단가는 남들의 2배 정도여서 수요가 없었을 뿐더러 상품생산은 7 ~8년 정도 걸려 경쟁력이 매우 떨어졌지만 지금은 3 ~4년으로 생산기질을 앞당기게 되었다. 김유신 씨는 전국의 수산인 들을 대상으로 슈퍼전복 종묘개발 노하우를 파급시키고 있으며 지난 3년동안 적극적인 홍보와 강의, 상담으로 지금은 전복 양식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보통사람 같으면 힘들여 개발한 기술을 자신만이 소유함으로써 희소성에 따른 고소득을 올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보를 상호 공유하고 선의의 경쟁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보다 우수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본인 고유의 노하우를 알리고 있는 것이다. 한편, 전복협회 회장으로 봉사하며 최고가 최고를 낳고, 최고를 향해 항상 매진한다면 수산증식의 신기술 개발에 있어서도 무궁한 발전이 있으리라 여기며 지금도 열심히 매진하고 있다.